ㅇ 임진왜란시 선봉군 다음의 중군(中軍)이 주둔했다해서 중군마을. - 농사외에 양봉과 잣과 송이 채취를 부업으로 산물을 판매홍보하고 있음. - 인월에서 월평마을 다음으로 만나는 동네로 담벼락의 길안내와 벽화가 정다웁네요.
ㅇ 중군마을에서 황매암 가는 길목에서 반겨주는 다람쥐 - 가까이서 찍을 때까지 포즈를 취해주는 센스
ㅇ 항매암 마당에서 게임을 하는 실상사 작은학교의 교사,스님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 - 작은학교 : 경쟁과 지식쌓기 위주의 현실교육을 탈피하고 생태와 자립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성숙해가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실상사 작은학교'
- 공동체본부는 실상사에, 작은학교는 둘레길3길 인월~금계구간중 매동에서 등구재 넘어가는 산속에 위치 (두 곳다 방문한 바 있고)
ㅇ 마침 공동체대표인 전 실상사 주지 도법(道法)스님을 오랜 만에 조우 담화 - 도법은 봉은사 명진스님 사태와 관련, 정치권과 종단에서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간담회를 요청한 바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스님.
ㅇ 황매암 창건자이자 주지스님인 일장스님의 글씨로 보여짐 -일장(日藏)스님은 석정(石鼎), 수안(秀眼)스님과 함께 불교계 내외의 3대 스님서화가. 특히 일장은 글씨, 석정은 불탱화, 수안은 선화로 유명. (본인도 일장의 반야심경, 석정의 동자승행다도, 수안의 일월도 소장,자랑같아 지~송)
ㅇ 암자에 걸린 현판, 塵外孤標(진외고표) - 티끌 밖에 외로히 높이 섬 => 속세를 떠나 홀로 수행함으로 해석해 봅니다. (수타니파타 중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ㅇ 명필인 제주도의 소암(素菴) 玄中和선생 글씨를 일장스님이 서각한 것으로보임
ㅇ 법당앞 마당에서 주운 분청백자 도자기 조각 - 정축년이면 1977년이라 13년전 여름에 월인요에서 구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 연화다실 글씨가 일장스님체라서 얼른 베낭에 담았다. 차주전자 뚜껑 받침이나 찻잔 받침대로 쓰야지.
ㅇ 바위를 뚫고 나왔으되 바위를 깨뜨리지 않는다. - 화이부동(和而不同) ;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는다. <논어에서> -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 뒤엉켜 있지만 각각의 본성은 뚜렷하고 <의상대사의 법성게에서>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지난 옛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웁고 사무치려는 것이 바로 늙어가는 징후가 아닐까?
ㅇ 400년 장항당산 홍송의 위용 - 지금도 당산제를 지낸다는 소나무 가지들의 대자유 - 일송 이행, 정화력과 기공이 가장 큰 첫째 소나무, 둘째 은행나무라. ㅇ 장항(獐項 : 노루 장, 목덜미 항) ; 산세 지형이 노루목 형국이라고.
ㅇ 매화 진달래 목련 버들강아지 그리고 봄이 오는 소리
ㅇ 등구재 가는 길, 매동마을의 뒷밭과 산에는 고사리 재배지가 많다. 둘레길 탐방객들의 손타기가 많지만 애교로 탓하고 있다.
ㅇ 효행찬양비 - 내용문을 읽어보니 마을 주민이었던 정기조 정기윤(鄭基祚 鄭基潤) 형제가 94세의 양친을 100세까지 병수발한 효행을 전라북도유림들이 추천하였다고 기록, 후손들이 이를 터잡아 세운 것으로 보여짐. - 매동(梅洞)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형국이라 하니 효자와 풍유객들도 나올 법함.
ㅇ 등구재 너머 산아래 창원마을의 고즈넉한 시골집 - 뒷 동네 밥 짓는 굴뚝연기가 소소히 피어 오르고, 등허리 할미가 산나물 바구니 끼고 집으로 오르는 정겨운 그림 (사진에는 전봇대 옆 머리만 보인다) - 창원 = 조선시대 조세물품보관창고 + 옆 원정마을
ㅇ 목적지 금계마을 날머리길 "남자작은볼일보는곳" -레스민박 "나마스테"에서 행인들을 위해 길가에 공한 남성전용해우소
ㅇ 내용문 ; <산다는 것은> 박성철 시인 글
우리가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빚지며 사는 것 그 누군가 나를 향해 미소 지을때 그때야 비로소 내가 살아 있는 것 우리가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진빚 되갚으며 사는 것 그 누군가 나를 향해 내민 손의 온기 그때야 비로소 누구에게 전해주며 사는 것 우리가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할 때 슬픔이 되는 것 하지만 그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한땐 절망이 되는 것 누군가에게 빚지며 살고 그 빚 되갚으며 오늘 하루도 사랑했노라. 웃음 짓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것 어슬프게 살아보고 삶을 눈물이라 말하지 않는 것
ㅇ 금계마을 정자와 창동(創洞)비
- 금계(金鷄)마을로 개명되기 전 마을 이름은 ‘노디목’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 사투리로 칠선계곡에 있는 마을 (추성, 의중, 의탄, 의평)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노디)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함. - 산촌사람들의 정을 날랐을 징검이 세월에 씻겨 나가고 지금은 그 위에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 이후 주민 이중식(李重植)이란 자가 마을뒷산을 금산, 앞마을이 닭모양으로 금계형국의 명당이라고 주장하면서 금계마을로 창동(創洞)하였다고 함. 이를 기념한 비로서 그 내용이 비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 금계포란형(金鷄包卵닭이 알을 품은) 지세는 봉화의 닭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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