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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한산 12대문

의산(宜山) 2010. 5. 20. 00:21

 

 

 

 산행지소개 :

 

지정번호 : 사적 제162호

▒ 지정일시 : 1968년 12월 5일

▒ 시       대 : 조선시대

▒ 규모·양식: 543,795㎡ 석축

▒ 재       료 : 석조기단, 목조

▒ 소  유  자: 국유

▒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 외,

                    서울특별시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일원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때 한성의 관망을 위해 도성을 축조하고, 그 방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삼각산에 산성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백제 개로왕(蓋鹵王) 5년(132)에 이미 나타나고, 신라는 이곳의 비봉(碑峰)에 진흥왕(眞興王)이 순수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진평왕(眞平王) 25년(603)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북한산성을 포위 공격하자 왕이 1만명의 군사로 구원한 기록이 있고, 661년에는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북한산성을 20여일간 포위 공격하자 성주이던 동타천(冬陀川)이 성안의 주민 2, 800명과 함께 필사의 결전으로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북한산성은 오늘날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북한산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한산성(漢山城) 즉 한산 지역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한편 11세기 초 거란의침입이 있자 고려 현종(顯宗)은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삼각산에 옮겨왔다. 고종(高宗)19년(1232)에는 삼각산에서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으며, 우왕(禑王) 13년(1387)에는 삼각산에 중흥산성(重興山城)을 쌓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자주 당하자 도성의 외곽 산성을 마련하자는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효종 10년(1659)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하여 수축하게 하고, 숙종37년(1711))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해 4월에 착수한 이 공사는 훈련도감(訓鍊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3군문이 담당하였고, 그 아래 각 군문에는 책임 감독관으로 낭청(郞廳)을 두었으며, 또 그 아래에 내책응(內策應)·외책응(外策應)·독책장(督策將)을 두었다. 공사별로 부석패장(浮石牌將), 축성패장(築城牌將), 수구패장(水口牌將), 운석패장(運石牌將), 치도패장(治道牌將)과 이장변수(泥匠邊首), 야장변수(冶匠邊首), 석수변수(石手邊首), 목수변수(木手邊首) 등으로 공사를 감독하도록 하였다. 축성에 필요한 노동력은 3군문의 군사는 물론 서울의 주민과 승려들이 동원되었고, 그 밖에 모역군(募役軍)과 각종 공장(工匠)이 동원되었다. 서울의 주민은 경상가(卿相家) 이하 각 호(戶)를 대·중·소로 구분하여 대호는 3명, 중호는 2명, 소호는 1명씩 식량을 지참하고 취역에 나섰으며, 모역군은 한 달에 쌀 9두와 면포 2필씩이 지급되었다. 이때 이룩된 것이 오늘날의 북한산성이다.

 

약 6개월에 걸쳐서 완성을 보게 된 북한산성의 성기(城基)는 보현봉·만경대·백운대·원효봉·대서문·의상봉·증취봉·나한봉 등을 연결하는 선으로 길이는 모두 7, 620보, 즉 21리 60보가된다. 그 중에서 수문(水門) 북변에서 용암(龍岩)까지의 2, 292보는 훈련도감이, 용암 남변에서 보현봉까지의 2, 821보는 금위영에서, 수문 북변에서 보현봉까지의 2,507보는 어영청에서 각각 담당하여 쌓았다. 성문은 모두 13개로 수문 북변에서 용암까지 사이에 수문(높이16척, 폭 50척), 북문(높이 11척, 폭 10척), 서암문(西暗門, 높이 7척, 폭 7척), 백운봉암문(높이 6척 3촌)이 있고, 용암 북변에서 보현봉까지 사이에 용암봉암문(높이 6척 5푼, 폭 7척 5푼), 대동문(大東門, 높이 9척, 폭 10척), 보국문(輔國門, 높이 6척 6촌, 폭 6척 5촌),대성문(大成門, 높이 13척, 폭 14척)이 있으며, 수문 남변에서 보현봉까지 사이에 대서문(大西門, 높이 11척, 폭 13척), 청수동암문(높이 7척, 폭 7척), 부왕동암문(높이 9척, 폭 8척), 가사당암문(높이 7척, 폭 7척), 대남문(大南門, 높이 11척, 폭 11척)이 있었다.

 

축성이 끝난 후 숙종 38년(1712) 10월에 이르러서는 북한산성의 주관부서로 경리청(經理廳)을 설치하고, 여기에 도제조와 제조관을 두었다. 행궁(行宮)의 수호ㆍ관리는 관성장(管城將)이 맡았으며, 수성장병(守城將兵)으로는 대성문ㆍ동문ㆍ 서문에 수문장 각 1인과 갑사둔(甲士屯), 점암둔(點岩屯)에 둔장 각 1인을 배치하였고, 수첩군관(守堞軍官)은 266인, 별파진(別破陣) 200인, 아병(牙兵) 635인이 항상 거주하였다. 그 후 영조 23년(1747)에는 총융청(摠戎廳)으로 하여금 관리토록 하였고, 이듬해에는 상원봉(上元峰) 아래에 130칸의 행궁과 140칸의 군창(軍倉)을 지었다. 성내에는 승군(僧軍)을 위한 136칸의 중흥사(重興寺)가승군 총섭(摠攝)이 있는 곳이었고, 이 밖에도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가 있었다. 성안에는 8개소의 창고가 있었으며, 99개소의 우물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 성의 둘레는 12㎞, 성 안의 면적은 200여만평으로, 성벽은 아직도 잘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성곽의 여장은 허물어졌으나, 현재 대서문이 남아 있고 장대지(將臺址)·우물터·건물터로 추정되는 방어시설의 일부가 남아 있다. 1990년부터 훼손된 동장대·대남문·대성문·대동문·보국문과 성곽들을 보수·복원하여 거의 완공 단계에 있다.

 

▲12성문 종주의 개념

12성문 종주란 북한산성 능선상의 12성문을 종주 하는 산행을 일컫는다. 북한산성 안의 성문은 모두 14개, 원효능선상에 시구문(서암문), 북문 등 2개의 성문이 있고 주능선상에는 위문(백운봉암문), 용암문(용암봉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등 6개의 성문이 있으며 의상능선 상에는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대서문 등 4개의 성문이 있다. 또한 계곡에 중성문과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코스를 약간 복잡하게 잡으면 14성문종주도 가능하지만 능선상의 12성문만을 산행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번째-시구문

정확한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안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주민들에게 시구문(尸柩門)이라고 불리웠고 이 이름이 원래 성문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 고착화(?) 되어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두번째-북문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문루(門樓)가 폐기되어 없어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문루(門樓)는 성문 위에 지은 다락집으로 유사시 장수의 지휘소가 되며 성 밖의 적을 조기에 발견하고자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건축물입니다

 

▲세번째-위문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일컫고 있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합니다.

 

▲네번째-용암문

정확한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답니다.

 

▲ 다섯 번째-대동문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 진달래능선이 끝나는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습니다.

 

▲ 여섯 번째-보국문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 일곱 번째-대성문

보현봉(普賢峯)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입니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답니다.

 

※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 북한산성 내 행궁은 산성을 축조하던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지어졌답니다. 북한산성중에 제일 큰문이며 왕이 출입하던 문이라 역시 장엄하다.

 

▲ 여덟 번째-대남문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입니다. 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 해 있습니다.

 

▲ 아홉 번째-청수동암문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습니다.

 

▲ 열 번째-부왕동암문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입니다. 최근까지 성문 우측에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 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입니다.

 

※ 홍예(虹霓)란 성문 얼굴의 윗머리가 무지개같이 반원형(半圓形)이 되게 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 즉, 홍예문(虹霓門)을 말합니다.

 

▲ 열한번째-가사당암문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령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웠답니다.

 

※ 암문(暗門)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위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 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입니다. 성안에 필요한 병기 및 식량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할 때 이 통로를 사용한답니다. 참고로 현재 북한산성에는 모두 7개의 암문(暗門)이 남아있습니다.

 

▲ 열두번째- 중성문

원효봉(元曉峯)과 의상봉(義相峯)을 직선으로 그은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한 성문입니다 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됐습니다.

 

▲ 열세번째-대서문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입니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였던 최헌길이라는 분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 열네번째-수문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폭 50척(15.5m)에 높이 16척(5m)인 큰 규모의 수문(水門)으로 1925년 8월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때 성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구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보이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 계곡 양옆 산비탈에 남아있는 성곽의 흔적만이 이 두 성곽 사이의 협곡에 웅장했던 수문(水門)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

    수문(水門)이라고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을 수구(水口)라 합니다.

    현재 수문터 아래 수구정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산행코스: 산성매표소-수문-대서문-중성문-가사당암문-부암동암문-청수동암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동장대-용암문-위문-백운대-여우굴-북문-서암문(시구문)-산성매표소

산행시간: 초행자 9시간, 중급이상: 7시간, 선수: 5시간( 20산우회에서 옮긴글)

출처 : 군성산악회
글쓴이 : 한창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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