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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둘레길8,9일부)이끼계곡~정거고개~운림고택~임당1리~지석묘~임호서원~박실쉼터(7.7.화.후반)

의산(宜山) 2020. 7. 9. 16:00



 원시적 분위기의 이끼계곡.  비록 규모는 작지만 보기 드문 광경이어서 입이 절로 벌어진다.





이끼 낀 주상절리 바위옆으로 떨어지는 와폭.


오른쪽으로 계곡을 건너면 화전민들의 밭 터와 깨진 가마솥이 있는 화전민 집터

여기서 주 계곡을 지계곡을 만나는데 이 작은 골짜기를 따라 오른다

이번 8코스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다. 거의 길없고 잡목수풀과 바위돌들의 지맥길급이다.


 지능선을 만나면 왼쪽으로 오른다

 옛길의 특징을 맛볼 수 있는 '갈지()자 길'을 한참 오르면 길이 확 넓어진다.



△8코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정거고개'쇠등'이라고도 불린다.

옛날 방음리 사람들이 동곡장이나 청도장에 소 팔러 갈 때 넘던 고개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2014.9.5 새마을동산에서 출발하여 까치산을 거쳐 호거산으로 갈 때 거쳤던 고개로 기록되어있다.

△정거고개를 넘으면 산허리를 돌아서 내려가는 환상적인 옛길이 이어진다

 직선이다 싶으면 어느새 갈지자로 이어지고, 다시 부드러운 곡선 길이 나타나다가 

▽마른 계곡을 만나면 길이 없어진다.

계곡건너 없어진 길에 연연하지 말고 험한 계곡을 벗어난 우측 능선숲을 헤쳐 방향잡아 진행하면

폐농가와 쌍무덤을 잇따라 지나면 안심이다.


넓은 개활숲을 헤쳐내리면 바로 임도를 만나고 (입구에 시그날)



임당마을 안골, 소축사를 지나고 예쁜 전원주택을 보고



통정대부 정삼품 김씨고택일명 '임당리 내시집

마침 대문이 열쇠가 아닌 굵은 철사로 감아놓아 열고 들어가 본다. (사진게재 매수제한)




7동으로 된 고택은 안채(6), 사랑채(4), 중사랑채(7), 큰고방채(4), 

소고방채(4), 대문채(5), 사당(3)으로 구성돼 있는데 배치가 다소 특이하다

대문에서 사랑마당을 거쳐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중문까지 모든 통과 공간을 사랑채에서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사대부저택보다 한층 더 엄격하게 내외공간이 구분돼 있다.

 

게다가 사랑채에서 집 안팎의 출입, 특히 안채의 출입을 철저히 관리(감시)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도 내시가 집 주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엄격한 설게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종착점인 임당1리 버스정류장이자 마을회관. 8구간을 마치고 

아직 2시 조금 지난 시간이라 9구간을 어느정도 진행하기로 한다. 9구간 출발.


임당1리마을회관에서 출발하여 임당리 임호서원과 지석묘을 거쳐

박실고개를 넘어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을 친견하고 

아름다운 박곡저수지길을 따라 천년고찰 대비사(大悲寺)에 들른 후 

동창천을 바라보는 운치 만점의 고택인 신지리 만화정(萬和亭)에서 마무리하는 9코스다.


고인돌군. 마을 입구 임당교를 건너 '당등'이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이다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이 여러 개 놓여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마침 고양이 한마리가 오수를 즐기고 있다. 

정월대보름날 마을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는 신성지이자 명당이라고.




다시 마을회관 쪽 삼거리에서 오른쪽을 보면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들이 보인다.

왼쪽이 임호서원(林湖書院)이고 오른쪽은 보물 제1237호로 지정된

'밀성 박씨 삼우정파 종중소장 문적'을 보관했던 보물전시각인 경의관(景義館)이다.


임호서원은 무과 장원급제자로서 임진왜란 때 두 아들 지남, 철남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고 선조 임금의 호송까지 책임졌던 

삼우당 박경신(1539~1594) 선생 및 두 아들을 향배한 곳 

잠겨져 있어 문틈과 담너머 관람.




경의관은 종전 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봉된 삼우당과, 호성원종공신 2등에 

   봉해진 두 아들에게 조정에서 내린 각종 문서 등의 보물을 전시했던 전각이다

  이 문서들은 대구국립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이다또 임호서원에 보관 중이던 

       말 안장 1점은 도둑맞았다가 지난 2005년 문화재관리청과 검·경 합동 단속 때 회수..

 




 갈림길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 오른다. S자 구비구비 돌아 30분이상 

 임도를 따라 오르면 어느새 박실고개. 임당리와 박곡리를 이어주는 길목.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 커다란 오동나무가 많이 보이는 '얌전한' 길을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오봉산 정상부의 베틀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때 인근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베틀로 베를 짜며 피난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바위다.

 


내림길 우측에 대방광불 화엄경 영취사 표지석을 보고 갔다오기로. 

지도에는 묘관음사. 정갈했지만 고찰스럽지 않아 외경만 보고 돌아간다.


 잠시 내려서면 '소작갑사터'  줄로 막아놓은 밭 속에 바위 몇개만 수풒에 쌓여있다. 

안내판의 안내문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게 벗겨져 있다.


 '신라 진흥왕 21(560)에 한 신승이 나타나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짓고,

인근에 소작갑사(또는 대비갑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등 

4개 절을 더 지었다'는 운문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바로 그 소작갑사다.


지금은 불상과 전각은 온데간데없고 

석등 받침 등 일부 흔적이 남아 있다는 데 울타리 타 넘고 수풀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억산 아래 박곡지 상류에 있는 대비사의 전신이 바로 이 절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바로 앞 예쁜 전원주택 1채를 둘러보고 앞으로 펼쳐진 마을과 산봉을 감상

골안못을 지나고 이어지는 박곡리 곡란마을을 통과한다

바로 앞 뾰쪽봉은 귀천봉으로 보이고 억산 구만산 능선이 조망된다.

 

"박실마을쉼터"현판이 붙어있는 정자와 정자나무의 쉼터에서 도로를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대비사까지 왕복하는 거리가 7㎞여서 오늘은 여기까지. 진행종료 

오늘도 무사진행 무사귀가, 무한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