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화산 영천암 소장의 특이한 범종(문화재)
영알둘레길12-1&2 당일2개 Special코스, 밀양명소 30여곳
▣ 2020. 08. 11. 화. 구름 뒤 비. 25~31℃. 통합대기 좋음
나홀로. 승용차&시내버스(총경비 2만원=유류+통행료+버스비)
▣ 총거리 : 21.18km (oruxmaps도상거리)
▣ 총시간 : 11시간30 (06:55 ~18:25)
- 관람&조망&촬영과 중식 등 4시간 포함(순이동 7시간30)
▣ 주요지점 및 진행경로
● 12-2코스 (영남루~밀양시내~밀양향교, 명소17여개소)
○ 영남루 입구(밀양시 내일동/12-1코스 종점&12-2코스 출발점)-
- 내일동사무소-
○ 밀양관아(밀랍보초 인형2명 등)-
- 밀양교 앞으로 복귀-左강변길-
○ 石花(안내판/동심원의 국화꽃 닯은 돌들)-
○ 아랑각과 아랑사(영정/사당/노거수/전설)-
- 左쪽문-현장 비석 -강변길 보수로 출금테이프-
○ 영남루(보물)(조망:밀양강 산성산 용두산 종남산일대 시가지)
○ (뒤)天眞宮(단군 영정)(옆 마당에 단군석상)
○ 작곡가 박시춘생가
○ 무봉사(신라고찰)(보물 석조여래좌상/“태극나비”)
(밀양 4대신비 중 하나:표충비,만어불영,얼음골,태극나비)
( * 국가에 유고시 무봉사에만 태극나비 출현)
- 일주문(右측샛길向)-
○ 사명대사 동상
○ 밀양읍성과 무봉대(망루 겸 정자/아동산 정상)
○ 동문과 동문고개-도로건너 右 공터向-샛길-텃밭右길-큰도로-
- 횡단보도-이정표(대공원向)-산길-임도(이정표)-공설화장장-
○ 奇妙 모과나무(수십개 둥치가 엉킨)-사거리-
- 갈림삼거리 右행-
○ 울강 전홍표선생(밀양 독립운동의 선구자)묘소 안내판-
- “솔향기길”-삼거리 좌상행-
○ 추화산성-추화산정상(봉수대)(신라때 밀양일대=>추화군)
- 구급함-산성길 시계반대방향 한바퀴-임도-갈림길(벗어나)-
○ 추화산성 우물(음용불가)-되돌아나와-삼거리(주차장)-
○ 영천암(특이한 문화재 백운사 범종)-
- 삼거리 복귀-비포장 흙길-제사고개-
○ 충혼탑과 베트남참전비와 무공비
○ 시립박물관(시간 늦어 외관만)
- 밀양대로-박물관사거리 대각선 건너-
○ 교동 손씨고택과 돌답길 (고택들 모두 폐문)
- “열두대문” 한정식(고택중 가장 큰집)-손병준가-손병구가-
○ 밀양향교 (風化樓 대문,대성전/영남3대향교 경주와 진주 등)-
- 손정식고가 조망-은행나무-향교右측문-홍살문-골목길-
○ 교동농협앞 버스정류장(12-2종착점)
▣ 후기
○ 연이은 폭우와 장마로 산행지 선택이 제한적이다.
- 붕괴나 함몰의 위험이 있는 토사지역,
미끄러운 암릉릿지와 범람우려의 계곡구간,
물먹은 수풀무성한 또는 습지화 우려지역 등
○ 따라서 비록 장거리 장시간 소요되더라도 편이한
산행이 포함된 트레킹을 진행할 수 밖에.
- 결국 영알둘레길의 잔여구간들 중에서도 계곡과
천변강변 숲길이 포함되지 않으며 볼거리가 많은
스페셜구간으로 명소30여개소 섭렵의 12-1&2코스.
○ 일기예보에 오후 3시부터 비 온다기에 조출조퇴위해
새벽에 출발하여 3시전 마칠려고 하였으나 아침8시부터
폭우와 가랑비가 번갈아 내리지만 온 김에 우중강행.
▣ 실제진행 기록트랙 gpx파일
[파일:2]
당일 후반부 12-2 스페셜구간 참고지도
제12-1코스의 종착점이었던 밀양교를지나 영남루 앞에서 우선 밀양관아(密陽官衙)로 향한다.
북쪽으로 도로따라 이동. 포졸 2명의 밀랍인형이 보초를 서는 밀양관아 응향문.
영님지방 최초의 밀양만세의거가 일어난 곳이기도.
근민이라.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과 가까이하는 정치하겠단 말은 늘 내세운다.
하지만 광화문으로 나와 국민들과 대화하겠단 광화문정치는 어디로 가고,
약속은 3년이 지나도 깜깜. 오히려 광화문에 모인 백성들을 고발하고 구속하고...
다시 내려와 밀양의 보물 영남루로 오른다.
과거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명성을 날렸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누각을 찾아 시를 짓고 시류를 논했다.
따라서 영남루는 밀양 8경 가운데 으뜸인 제1경으로 불린다.
선친 해강선생의 영남루를 주제로한 한시가 아직도 유품으로 안방에 걸려있다.
'영남제일루'라고도 불리는 영남루는 원래 밀양의 손님들을 머무르게 했던 건물이다.
최초 건립은 고려 말인 1365년 밀양 군수 김주가 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조선시대 들어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4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거대한 건물인 영남루는 좌우의 건물과 복도 또는 계단으로 연결돼
더욱 웅장하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천정에 조각된 문양과 용의 몸통을
형상화 한 대들보, 용 그림, 네 귀퉁이의 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 그림 등이
모두 빼어난 예술 작품을 이룬다. 이 건물에 특히 용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은
옛날 사람들이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을 화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물과 가까운 용을 많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밀성대군의 묘. 밀성대군은 우리 밀양박씨의 시조다.
신라 경명왕은 똑똑한 맏아들이 있었지만 나라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이후 그 아들은 밀양으로 내려와 평생을 보낸다. 바로 밀성대군이다.
▲천진궁의 단군영정과 천진궁 옆마당의 단군석상▼
밀양아리랑 시비에서 밀양아리랑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사명대사 동상은 무봉사를 들린 후 오르기로.
신라의 달밤, 비내리는 고모령 그리고 6.25의 대표곡인 전우야 잘자라를 작곡한 박시춘 선생.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한국 가요계의 거목으로서 대중가요 작곡가 최초로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서훈받았지만 '친일 작곡가'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등 정권에 따라 달리 평가됨이 안타깝다.
영남루 오른쪽인 1시 방향 강변길로 내려선다.
곧바로 석화가 나타난다. 동심원을 그리는 듯한 돌의 모양이 국화꽃을 닮았다
이 돌들은 영남루 경내 안팎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자연 현상이다.
석화 안내판 바로 옆 아랑각.
연인들이 영남루와 아랑각 일대에서 데이트를 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젊은 연인들은 영남루에서는 데이트 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시집을 가지 못한 아랑 낭자의 심술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밀양 최대의 축제인 '아랑제'가 열리고 아랑아가씨까지 선발하고있어
아랑이 밀양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이 짐작된다.
아랑각을 내려와 바로 좌측 계단을 올라가면 무봉사와 연결.
신라 혜공왕 9년(773년) 법조 대사가 현재 영남루 자리에 있던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건립한
무봉사는 보물 제493호인 석조여래좌상도 유명하지만 '태극나비'로 더욱 유명하다.
날개에 태극무늬가 그려진 이 나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봉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인데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만 나타난다고 전해온다.
표충비, 얼음골, 만어사 경석 등과 함께 '밀양 4대 신비'로 .
무봉사를 나와 일주문 우측의 샛길로 오르면 사명대사 동상.
다시 오르면 아동산에 위치한 밀양읍성이다.
성곽을 따라 올라 망루 겸 정자인 무봉대
무봉대는 아동산 정상부분이다. 관아의 동쪽이라고 아동산.
비와 안개로 영남알프스 능선은 숨어버렸다.
조성한지 얼마 되지않은 듯 깨끗한 밀양읍성 동문, 그리고 고개마루는 동문고개.
능선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길로 가다가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면 사거리의 중심에
수십 개의 둥치가 서로 엉겨붙은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의 커다란 모과나무를 만난다
'밀양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을강 전홍표 선생의 묘소 안내판과
묘소길 우측의 임도길로 향한다.. 추화산성(推花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문인석이 아닌 무인석을 세워둔 묘지는 무신벼슬인 호군(장군)의 묘
▲마마표지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다시 이정목과 쉼터의 갈림길▼
솔 향기 짙은 길을 따라 올라온 해발 240m의 추화산 정상 봉수대.
추화산은 신라시대에 이 산의 이름을 따서 밀양 일대를 추화군이라고 불렀다.
추화산성은 가야와 신라, 후백제와 신라 등이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임도우측의 풀숲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성내 우물이 보인다.
풀숲으로 가려진 입구에 잘 보이도록 시그날을 부착한다.
우물인지 샘터인지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물을 본 후 다시 되돌아 나와 우측 내리막을 따라 가면 영천암 입구 삼거리.
우측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인 백운사 범종이 있는 영천암으로 들어간다..
▲추화산 정기가 들어오는 어수역할의 바위와 문화재 범종▼
전체적인 문양과 틀이 우리나라의 전통양식과 매우 다르다.
영천암주차장 삼거리로 돌아 나와 포장길을 따라 내려서면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는 흙길을 만난다.▲
포장길을 버리고 이 흙길을 택한다. 제사고개에서 내리막을 타고 내리면 충혼탑 상단부.▼
충혼탑,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이 지역 출신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곳.
밀양시립박물관. 밀양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과 근현대의 유적들, 밀양 백중놀이를 비롯한
약산 김원봉 등 독립투사들의 기록을 보고 쉽지만 6시가 넘고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포기한다.
박물관 정면 도로 우측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교동 손 씨 고택.
운치 그윽한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크고 작은 고택들이 반갑지만 모두 문이 닽혀있다.
밀양유림회관을 지나 손씨고택도 이어지고.
그 중 '열두대문'이라는 한정식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가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한 때 99칸에 달하는 대 저택으로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중반 손성증이 최초로 지었다.
손 씨 고가 뒤로 1602년 건립된 밀양 향교.
보수한다고 문을 닫아놓았지만 대성전을 제외하곤 모두 관람과 촬영을 한 비결은 밝힐 수 없다.
대문 역할을 하는 풍화루(風化樓)와 대성전 등 크기가 유독 커서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영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향교로 손꼽힌다. 이 향교로 인해 동네 이름도 교동이 됐다.
명륜당과 앞 마당의 은행나무. 서울 명륜동 성균관을 비롯한 향교에는 은행나무가 다 있다.
공맹을 비롯한 성현을 모셔놓은 대성전은 대문틈 사이로 관람.
미송과 풍화루가 한폭의 그림이고 풍화루에 올라가 주변 조망
풍화루 오른쪽의 문을 지나서 골목길을 걸어나오면
창조주와 구세주 미륵대불을 신앙대상으로 하는 민족종교 "미륵대도 금강현화종" 가정불당.
흙담 돌담 한옥길을 빠져나간다.
12-2스페셜코스의 종점인 교동농협 앞 버스정류장. 오늘의 긴 일정을 마친다.
오늘의 긴 여정 무사진행, 무한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