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바로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A) 황영조 올림픽경기장,콜럼버스동상,사그라다 파밀리아(17.08.14)

의산(宜山) 2017. 9. 20. 20:40


인천공항 콘서트



바로셀로나는 스페인 제2의 도시


본래 스페인은 카스티야 왕국(마드리드와 라만차), 아라곤 왕국(카탈루냐),

레온 왕국(마드리드 북서부), 나바라 왕국(빌바오 지방),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5개의 왕국으로 나눠져 있던 이베리아 반도였다.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이 통합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왕국이 되었고 언어도 카스티야어를 사용했다.


1937년 스페인 내전에서 극우파였던 프랑코 총통이 승리를 하고

 37년간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정치와 행정에 있어 막강한 힘을 가졌던

카스티야와 지중해 무역을 통해 상업적으로 번성했던 카탈루냐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코 총통이 카스티야에 정착하면서 카스티야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의 사용을 금지시켰고, 자치국 깃발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자치권이 프랑코 총통에게 넘어가면서 카탈루냐의 세금까지 고스란히

카스티야로 넘어가고 카탈루냐 지방은 지독한 탄압과 불평등을 겪게 됐다.


바르셀로나의 자존심이었던 축구팀 ‘FC 바르셀로나(Futbol Club de Barcelona)’는

카스티야어 표기법으로 ‘CF 바르셀로나(Club de Futbol Barcelona)’로

바꾸어야 했고, 로고에 있던 카탈루냐 지역 모양도 삭제해야 했다.

축구장 안에서만큼은 카탈루냐어가 허용되어 카탈루냐 사람들의 유일한

울분과 서러움을 표출할 수 있었다.


프랑코 총통이 죽자 카탈루냐는 다시 자치권을 되찾았고,

그들만의 언어인 ‘카탈란’과 자치국 깃발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독립을 원하고 있다.

카탈루냐에 가면 스페인국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고, 펄럭이는 카탈루냐 깃발을 본다.



엘 클레시코는 우리나라의 한일전과 같은 FC 바르셀로나 VS 레알 마드리드

의 경기로, 전 세계 축구 더비게임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여 주는 라이벌 전.

실제로 FC 바르셀로나의 영웅이었던 포르투갈 출신의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FC 바르셀로나 홈구장이었던 캄프 누로 경기를

치르러 왔을 때 경기 중에 그를 향해 온갖 물건들을 던져서 경기가 15분 동안

중단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월드컵 경기에서도 스페인이 나오면 카탈루냐 사람들은 상대팀을 응원할 정도다.

지금도 바르셀로나 홈구장에 가서 스페인 국기를 흔드는 건 한일전 때 우리나라

응원 팀에서 홀로 일본 국기를 흔들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스페인 카탈류냐지방의 독립여부

바로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카탈루냐지방이 항상 독립하려는 이유

(카탈루냐주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가 현지시간으로 101일에 실시).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국가 이전에 왕국이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던 것처럼. 우리는 독립을 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지만 카탈루냐는 아직 독립을 못해서 언제나 독립하고 싶어한다.

 

카탈루냐만의 언어, 국기, 국가가 따로 존재하며 자신을 카탈루냐인으로

생각하는 사람 비율이 아주 높다.

일상생활에서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은 편.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은 지역감정이 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라도 같은) 이들은 축구경기에서 특히 유난히 심합니다.

 

카탈루냐가 독립을 주장하는 요인 크게 문화적요인과 경제적요인.

첫째 문화적 요인 :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의 주류를 이루는

카스티야와는 다른 문화와 언어를 보존해오면서 다른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는 지방입니다.

둘째 경제적 요인 :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 전체 GDP에서

20%를 차지할 만큼 매우 큰 경제력을 가진 지방입니다.

리하여 중앙정부에 내는 세금 또한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많은 세금납부에 대비한 지역에 대한 혜택은 매우 낮은 편.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주민들이 납부한 세금 대부분이 기타

개발낙후지역에 투자되기 때문에 카탈루냐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낙후지역을 위해 희생을 강요 받고 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 이런 경제적요인 탓에 카탈루냐지방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희망하게 된 것.

 

주민투표 결과 분리독립 결정시 카탈루냐는 48시간내 독립선언.

카탈루냐의 인구는 스페인 인구의 1/4750만명에 달하며,

스페인 국내 생산의 20%, 총수출의 40% 차지, 경제적 핵심지역.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선언으로 카탈루냐 리그가 출범한다면

스페인 라리가는 약70%이상 경제적 타격이 발생 예상.


몬쥬익언덕 위 올림픽경기장


마라톤 우승, 황영조 선수의 기념물들









람브라스 거리 끝에서 파우광장으로. 관세청 건물



"팔로 볼라초"(술취한 나무). 배뿔뚝이에 까시표피.




관세청



신성동맹함대(스페인 등 기독교)가 투르크함대(터키등 이슬람)를

물리친 래판토(Lepanto)해전 기념비(전함)


콜럼버스 동상과 아메리카대륙 발견 기념탑

콜럼버스의 왼손에 쥔 것은 미국 토산품 파이프.







광장앞 토산품과 골동품 가게(위)

파우광장(기념탑) 주변의 관공서들(아래)

(위)바르셀로나 항만청과 아래의 해군성






관세청



과거 공장굴뚝이었던 것을 기념으로 남겨 둠.



스페인 전통요리인 "빠에야".

조개와 새우 등 해산물과 고기 그리고 채소등을 넣고 볶은 후 물어부어 끓이면서 쌀을 넣어 끓인다.



항구와 해변 해수욕장




물고기모양 조형물



도심의 이슬람사원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최후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 가족성당)성 가족이란 예수와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가우디의 스승 비야르가 네오고딕양식으로 설계와 건축,

1882년 착공, 144년이 걸리는 2026년 완공예정.

'우리도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처럼 멋진 성당을 지어봅시다'라는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의 제의로 1882년부터 시작한 성가족성당은

 1883년 가우디가 그의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뒤부터 본격건축.

당시 가우디는 31살이었는데 그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기 전까지인

43년동안이나 밤낮없이 열정을 바침.


성당의 주출입구는 3군데이자 성당도 3면으로 정면쪽은 아직 건설중.

좌우만 완공. 정면의 우측(아래사진의 중앙)이 가우디가 생전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완공 (뒤에 사진첨부)




4개씩 3면 12개의 종탑은 예수의 12제자 상징.

(위 아래) 옥수수모양 종탑 바로아래 "SACTUS"(거룩하도다) 조각.

또한 종탑마다 아래에 예수의 12제자 모습과 이름이 새겨져있다.

맨아래에 착공연도인 1882가 양각조각.


(정면좌측인) 아래 사진이 조각가 수비리치가

 "그리스도의 수난"과정을 조각하여 1990년 완공.




(아래)로마병사 조각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 디스베이더의 모습을 연상.




십자가에 못박혀 고개를 숙이고 이는 예수님.

아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오른다.

중앙은 예수님의 피와 땀을 주었다는성녀 베로니카. 

그녀의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대로 찍혀나왔다는

이야기를 표현.

조각가 수비리치가 가우디를 기리기 위해

가우디를 재치있게 삽입(아래 제일 왼편 조각입상)


로마병사가 십자가의 예수님 옆구리를 찌르는 모습을 상징적 표현.

(아래)우측 독수리기둥은 로마를 상징, 그 옆에 앉은 고뇌의 빌라도총독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방향이든 합이 33. 예수님 사망때의 나이.


예수님을 포옹하고 입맞춤까지 하지만 뱀머리가 보인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밀고한 유다모습을 표현.

 이후 그림이나 조각에서 뱀과 함께있으면 유다를 상징.





좌측아래 닭과 함께 표현된 제자 베드로의 모습.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새벽닭이 울기전까지 나를 세변 부인할 것이다' 예언.(성경)


성베로니카의 수건아래 삼각형과 역삼각형은 알파와 오메가.


예수가 고문당했던 당시의 상황을 적은 글.

 "What is the truth?" 빌라도총독이 예수에게 한 질문도.


교회 내부 및 미사전경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