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기

精神一到⑤, 관음사 隨處作主 立所皆眞 (앉은 자리가 꽃자리)

의산(宜山) 2019. 7. 25. 18:19

精神一到, 관음사 隨處作主 立所皆眞

 

초능력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陰陽水氣 수련이

귀신(?)의 방해와 시간적 제약으로 지속할 수 없게

되자 好事多魔道高魔昇의 인연으로 여긴다.

 

차제에 背山臨水獅子座형국의 천년고찰 관음사를

접하고 음양수기에서 불교로의 전환 계기가 된다.

 

관음사, 지금은 마당에 대형법당이 조성되고 북측

다리의 관음교 해탈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지만,

그때엔 태봉교를 건너 동측으로만 들어갈 수 있었고

 

돌계단을 올라 바로 좌측 머리 위 암굴 감실(용화전)

속의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미륵불을 까치발로 뵙고,

‘12才 香山落袈山觀音庵이란 현판 위의 觀香樓

누각인 스님방 아래의 대문을 통해 마당에 들어서면

좌측 요사채를 지나 본 법당인 관음전이 위치한다.

 

개금된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이 대자대비보다는 근엄한

장군상으로 표현되고, 좌측 神衆道는 여타 절집처럼

유치한 색상이 아니고 정교하고 미려한 예술품이다.

 

다시 요사채 뒤 산으로 오르면 원래의 탑신부 3층에

기단을 2층으로 받쳐진 5층 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되 내려와 관음전 좌측 뒤로 돌아간 산신각에서는

절벽 아래 관음교와 건너편 도동마을이 바로 보인다.

 

새벽5시에 맞추어 절에 올라가니 대문이 잠겨있다.

동화사의 말사로서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명찰에서

새벽예불을 하지 않는다니, 거기다 문도 열지 않고.

 

스님을 불러보나 보살을 깨우나 아니면 대문을 탕탕

두드려 보나 하다가 도둑처럼 문 밖에서 차량열쇠로

나무 문걸이를 살살 밀어보니 서서히 열린다.

 

그리고 막무가내 관음전 법당으로 바로 들어가 불법

침입한 사찰에 대한 예의로 혼자서 예불을 올린다.

도량석과 종송은 생략하고 비치된 예불문집에 따라

예불문과 천수경 그리고 신중단에 반야심경으로 끝.

 

다음 108배후 좌선 한 순배하고 산신각 신령님께도

예를 올리는 등 약2시간여를 보내고 절을 내려온다.

그때까지도 스님이나 공양주보살은 모습이나 인기척

을 보여주시지 않았다. 나도 찾지를 않았고.

 

연 삼일이 지나 나흘째에는 절 대문만 열려있었고

마치고 나올 때까지 서로가 말없이 의식만 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많은 토일요일엔 많은 시간을 좌선

에 집중한다. 틈틈이 行禪用으로 108배를 곁들이고.

 

10여일이 지나자 그제서야 돌아가는 나를 스님이

부르신다. 법당 관세음보살상이 특이하게도 將軍像

인 것과 같이 다소 험상(?)궂게도 보이는 거구의

장군 같은 智愚스님의 첫 인상은 威嚴이었다.

 

새벽에 남의 절 대문을 따고 들어오는 이상한

사람에 직접 대응하려다 어찌하는가를 보았단다.

3일간 계속되자 단순히 절에 오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불법침입자로 만들 순 없기에 문만 열었다 함.

 

스님과의 茶談은 나의 根機를 가늠하여 수행에 대해

조언하기 위한 자리였고, 그 간의 과정을 들으시고

불교에 대한 전문적인 수행을 권하셨다. .

 

산신각 뒤의 막아놓은 문을 밀치고 나가면 바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조금 나아가면 머리 위로

처마바위(눈비를 막아주는) 아래 좌선대가 있다.


암벽면엔 禪修行한 흔적의 글귀들이 되어 있고

좌선대에는 자칫 惛沈(혼침,흐리멍덩 또는 수면상태)

掉擧(도거, 건들건들 또는 들뜬상태)의 경우 바로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앉을 자리 공간이다.

 

많은 선수행자들이 거쳐 간 수 천년 전래의 자리를

단골신자도 아닌 나에게 할애해 주신 스님께 보답할

길은 가르침대로 정진하는 것 뿐이리라.

 

선수행과 더불어 敎理공부도 함께하는 定慧雙修

위하여 初發心自警文信心銘을 비롯한 비교종교학

12과목을 선정해 주시며 탐구하게 하셨다.

 

이날 이후부터 스님께서 직접 올리는 새벽예불이

이어진다. 불편한 몸을 구실로 하지 않았던 예불을

나의 새벽 출입과 예불이 자극제가 되었다고 하심.

나는 이제 용화전, 관음전과 산신각에 기본 삼배만

올리고 좌선대에서의 좌선만 집중적으로 행해진다.

 

修練에서 불교修行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

가 되었고 이제 새로운 자리가 마련되었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느 곳에든 주인 되고 지금 있는 곳이 모두 진리다.

앉은 자리가 꽃 자리”. “Here and Now”